기업은 증대하는 글로벌 경쟁과 예측 불가능한 시장 환경에 처해있다. 경영자들은 경쟁자보다 빠르게 성장하지 못하면 조직이 둔화되고 결국은 도태될 거라 우려하고 있다. 그럭저럭 경쟁 우위를 유지하거나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한다고 해도 현 수준에 안주하는 기업은 조만간 성장 한계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새로운 성장 돌파구가 그 어느 때 보다 절실히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IBM이 2004년에 전세계 CEO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5명 중 4명의 CEO가 매출 증대에 역점을 둘 것이라고 하였다. 내부 운영 혁신에 의한 원가 절감과 생산성 향상은 이미 정점에 달한 것으로 보인다. 경영자들은 매출 증대로 관심을 옮기고 있으며 이를 통해 성장에 박차를 가하려 한다. 2005년에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실시된 조사에서도 CEO들의 성장 욕구는 재차 확인되고 있다.
이처럼 대부분의 기업들이 성장 기회 발굴을 전략적 목표로 내세우지만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는 회사는 많지 않다. 그 동안의 성장은 글로벌 교역 증대와 합병 등에 의한 것으로 이러한 과거의 성장 전략이 점차 그 효력을 잃어간다는 분석이다.
성장에 대한 인식의 제약
그런데 성장의 한계는 외부적 환경 요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기업 스스로 부여한 인식의 한계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일컬어지는 성장의 제약 요인은 해당 산업의 성숙으로 인한 매출 정체이다. 그러나 기업의 성장이 산업의 성장세에 절대적인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1994년부터 2003년까지 S&P Global 1200에 등록된 회사들을 대상으로 실시된 조사에 따르면 고성장 기업들은 그들이 속한 산업의 평균에 비해 무려 5배에서 10배 가량의 높은 성장을 거둔 것으로 나타났다. 성숙 산업으로 여겨지는 소비재와 자동차 산업의 상위권에 속해있는 업체들은 성장 속도가 빠른 금융과 전자 산업의 평균 성장률 보다 더 높은 성장을 달성하였다. 산업의 성장 자체가 해당 기업의 성장을 제한하거나 보장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 산업이 기업의 성장을 운명 짓지 않는다
국내 기업들은 어떠한지 살펴보았다. 먼저, 업종의 성장 수준과 개별 기업의 성장률을 분석하기 위해 1996년부터 2005년까지 10년 동안 등록된 533개 상장사를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그림1> 참조).
국내 기업들을 분석한 결과도 유사하게 나타났다. 첫째, 동일 업종 내에서도 성장률 차이가 20% 가까이 발생하고 있다. 같은 업종에 속해 있다고 하더라도 개별 기업에 따라 성장의 정도가 매우 상이하다는 것이다. 둘째, 평균 성장률이 낮은 업종에서의 상위 기업들의 성장률이 높은 업종의 평균 성장 수준을 상회한다. 역으로 고성장 업종이라고 하더라도 저성장 업종보다 평균 실적이 떨어지는 기업들이 다수 존재하고 있다. 요컨대 특정 산업이 개별 기업의 성장을 결정적으로 구속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 고성장 기업은 산업의 성장 한계를 뛰어 넘는다
이번에는 자신이 속한 산업의 성장 속도 보다 월등히 높은 성장을 보이는 기업을 살펴 보았다(<그림2> 참조).
<그림2>를 살펴보면 해당 기업들이 좌우로 흩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폭이 넓을수록 동일 업종 내에서 고성장 기업과 저성장 기업의 성장률 차이가 크다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이 폭이 업종 간의 차이 보다 더 크게 벌어지고 있다.
또한, 업종 평균 성장률을 상회하며 고성장 하는 기업들이 다수 존재함을 알 수 있다. 한솔LCD와 현대미포조선 등은 업종의 성장률에 비해 두 배 이상의 고성장을 이루었다. 대우자동차판매와 웅진코웨이 등은 산업의 정체를 극복하고 고성장을 달성하였다. 물론 이는 업종을 어떻게 세분화하느냐에 따라 해석을 달리 할 수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들 기업이 10년 동안 지속적으로 20% 이상의 연평균 성장률을 보이며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산업의 성장 한계를 뛰어넘었다는 것이다.
산업의 성장 한계 돌파 방안
산업의 한계를 극복하고 지속적인 고성장을 거둔 기업들은 어떤 노하우를 가지고 있을까? 주요 기업들의 사례를 통해 시사점을 도출해 본다.
● 기본 텃밭을 확보하라
기업이 높은 수익성을 유지하고 장기적인 성장을 거두기 위해서는 핵심 사업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최근 3년간 매출과 영업이익이 50% 이상 성장한 기업들을 살펴본 결과 80%의 기업들이 2개 미만의 주력 사업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고성장의 비결 또한 핵심기술 보유와 시장 지배력을 각각 38%, 33%로 답하였다. 특정 영역에서의 강점과 핵심역량에 기반해 성장 모멘텀을 확보한 것이다.
‘성장 도박(The Growth Gamble, 2005)’을 저술한 앤드류 캠블 교수는 신사업을 고려할 시점은 핵심 사업에서의 경쟁력 강화가 더 이상 최고 경영층의 주의를 필요로 하지 않을 때라고 지적한다. 1990년대에 인텔의 관리자들에게는 두 가지 과업이 주어진다. 첫번째는 핵심사업인 마이크로프로세서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키는 것이다. 두번째는 새롭게 진입할 사업 기회를 능동적으로 발굴하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봤을 때, 두번째 과업보다는 첫번째 과업에 시간과 자원을 더 할애했으면 더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었을 거라는 분석이 있다.
물론 기본 텃밭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 현실에의 안주를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핵심 사업에서 조차 뚜렷한 성과를 보이지 못하면서 다른 사업을 추진하게 되면 비효율적인 사업이 추가될 위험성이 커진다. 신사업 추진에 소요된 비용은 실패한 사업에 투입된 비용 그 자체 보다는 핵심 사업에 주력할 역량을 분산시킨 기회 비용이 더 막대하다는 지적도 있다. 신사업과 핵심 사업을 왕복하면서 정작 자신의 주력 사업에 쏟을 힘마저 소진시켜버리는 것이다.
● 핵심 역량을 레버리지 하라
주력 사업에서 성장을 충분히 이끌어냈거나 또는 더 이상의 성장 여력이 없다면 새로운 수익원을 모색해야 한다. 성장 전략의 일환으로 주로 인접 비즈니스 진출을 시도하게 되는데 이 성공률이 25%에 불과하다는 연구가 있다.
크리스 주크(Chris Zook)는 그의 저서 “핵심을 확장하라(Beyond the core, 2004)”에서 인접 시장 진출의 요건으로 세가지를 제시한다. 첫째, 기존의 핵심 비즈니스와 연관성이 높아 서로 시너지가 발생해야 한다. 둘째, 인접 비즈니스의 시장 규모와 미래의 수익 흐름이 투자 비용을 상쇄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인접 비즈니스에서 선도 기업에 필적하는 성과를 거둘 수 있어야 한다. 요컨대 기존 사업과의 연관성을 토대로 최적의 상승 효과가 발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핵심역량을 레버리지로 활용하여 크게 성장을 거둔 사례로는 대우자동차판매와 신세계가 있다. 대우자동차판매는 내수 시장 점유율이 취약한 상황에서 자동차 판매 매출이 2001년 이후부터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워크아웃을 졸업한 2003년부터 본격적인 수익구조 다각화에 들어간다. 기존의 단순 판매를 넘어서 자동차와 관련된 토털 서비스 시스템을 구축하였다. 국내 자동차 이외에도 폭스바겐과 아우디 등 수입차를 함께 판매하고 자동차 정비 서비스, 자동차 관련 금융, 보험 사업도 추진한다. 연간 10 여만 대의 차를 구입하는 자사 고객에게 할부 및 리스 등 각종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여 금융 수익을 함께 거두어 들인다. 기존의 자동차 판매 역량을 십분 발휘하여 연관 비즈니스를 확대한 것이다.
신세계는 크게 백화점 사업과 이마트 부분으로 구분된다. 백화점 사업은 1990년대 후반 이후에 성숙기에 접어들면서 성장률이 크게 둔화되고 있다. 반면에 1993년에 시작한 할인점 사업은 매년 30%에 가까운 고성장을 달성하며 확고 부동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백화점과 함께 국내 최대의 할인점 점포를 보유하여 규모의 경제 효과가 크며 효율적인 점포 운영과 물류 시스템 확보로 경쟁업체 대비 높은 이익률을 달성하고 있다. 백화점과 할인점의 양대 축이 인접 사업을 확장해나가는데 굳건한 성장 교두보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 시장을 재정의하라
무한한 성장 산업은 없다고 한다. 이로 인해 시장의 성숙이 성장 정체의 불가피한 요인으로 언급되곤 한다. 그러나 성숙기로 접어들었다고 생각했던 산업에서 새로운 성장 모델을 발굴한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폭 넓은 관점에서 산업과 고객을 조망해보면 기존 시장의 틀에서 보이지 않았던 성장 기회를 포착할 수 있는 것이다.
1980년대에 미국내 서점 시장이 포화 상태에 도달하고 미국인의 평균 독서량도 감소하면서 서점 시장은 사양산업으로 평가되었다. 그러나 반스앤노블은 서적 판매와 더불어 차별적인 문화 공간을 제공함으로써 새로운 성장을 맞이할 수 있었다. 기존에 비좁은 공간에서 서서 책을 읽어야 하던 고객들은 깔끔한 분위기에 잔잔한 음악과 안락한 의자에 앉아 기분 좋은 경험을 향유하게 되었다. 서점 산업의 한계를 벗어나 새로운 성장 기회를 도출한 것이다.
2004년에 주요 MP3 플레이어 업체들은 시장이 성숙기로 접어들었다고 전망하였다. 온라인 무료 음악 서비스 중단과 MP3 플레이어 기능을 갖춘 휴대폰과 디지털 카메라의 생산 확대로 2005년부터는 성장에 한계를 보일 거라는 판단이었다. 그러나 IDC의 보고에 따르면 2004년에 80만대에서 2005년에 150만대 수준으로 MP3 플레이어 시장이 급격하게 커졌다. 애플은 MP3 플레이어 기기에 한정하지 않고 음악 콘텐츠와 기기를 연동하는 비즈니스 모델로 독보적인 1위를 차지하며 애플컴퓨터의 매출을 2배 이상으로 끌어올렸다. 시장을 재정의한 기업이 시장을 새롭게 형성하고 그 과실을 가져가는 것이다.
시장을 재정의하여 고성장을 거둔 국내 기업으로는 웅진코웨이를 들 수 있다. 웅진코웨이는 1989년에 창립된 이래로 매년 30%를 웃도는 고성장을 달성하였으며 작년에는 매출액 1조원 대의 대기업으로 성장하였다. 웅진코웨이는 렌탈 마케팅 전략을 통해 우량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었다. 렌탈 시스템은 소비자의 가격 부담감을 줄여서 기존에 소수 계층이 이용하던 가전 제품들을 대중화시켰으며 지속적인 부가 서비스를 통해 새로운 수익원도 창출하였다. 기존 시장의 범주에 얽매이지 않고 소비자의 욕구를 미리 예측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낸 것이다.
● 시장과 함께 변해가라
지속적인 고성장 기업은 두 가지 측면에서 산업에 대한 명확한 비전을 가지고 있다. 첫째, 그들이 속한 산업이 어디로 향해가는지 이다. 둘째, 새로운 환경과 경쟁 상황에서 어떻게 가치를 창출해내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해 간다. 이런 비전 하에 지속적으로 그들의 제품과 시장 포트폴리오를 점검하고 시장과 함께 진화해가는 것이다.
대표적인 성장 기업으로 언급되는 GE 역시 이미 주요 시장에서 확고한 지위와 매출 규모를 확보하고 있음에도 지속적인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GE는 제품 관점에서 간과할 수 있는 성장 기회를 파악하기 위해서 시장 관점에서 비즈니스 범위를 끊임없이 재설정한다. 시장 점유율이 10%를 초과하게 되면 시장을 다시 정의해 인접 상품과 서비스 영역으로 시장의 범위를 확장시킨다. 이러한 멈추지 않는 성장 추구 활동은 GE를 제조업체에서 서비스 업체로 역동적으로 전환시키는데 일조하였다. 일례로 항공기 엔진을 제조하는 사업에서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고 자금을 융자해주는 사업으로 변화해가는 것이다.
현대미포조선 역시 과감한 사업 전환으로 성장 기반을 마련하였다. 현대미포조선은 1975년에 설립된 이후로 20여 년간 선박 수리를 통해 수익을 거두고 있었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에 중국 등 해외 후발업체의 부상을 예상하고 선박 수리에서 선박 건조로 사업 전환을 시도한다. 회사가 당장 어려움에 처하지 않는 상황에서 시도된 사업구조조정으로 2000년대에는 사상 처음으로 적자를 기록하며 사내에 위기의식이 고조되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감한 구조조정을 계속하여 마침내 흑자 전환과 함께 선반 수주량도 급증하게 된다. 또한 대형업체는 외면하고 중소업체는 엄두를 내지 못하는 중형 컨테이너선을 공략하여 독보적인 위상을 확보하였다. 현재도 중국 등 후발업체의 움직임과 시장의 변화를 예의주시하며 향후 성장이 예상되는 새로운 고부가가치선 개발과 해외 시장 공략에 매진하고 있다.
성장의 패러독스를 극복하라
현재의 성장은 지금까지의 성공 요소를 지속적으로 개선해나감으로써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미래의 성장은 전혀 새로운 역량에 의해 창출되곤 한다. 현재와 미래의 모순이 바로 성장의 패러독스이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점진적인 개선에 익숙해 있다. 경영자들도 현재 원활하게 운영되고 있는 조직을 변화와 위험 속에 몰아넣으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산업의 한계를 돌파하고 지속적인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성장의 방향성을 수시로 재점검해야 한다.
성장의 방향성을 도출할 때에는 고객이 어디에 있는지(where customer is) 보다 고객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where customer is going)를 살펴봐야 한다. 고객 지향이라고 하여 현재의 고객에게만 시선을 고정시키면 기업의 성장은 정체되기 시작한다. 앞으로 맞이하게 될 고객과 시장의 변화에 관심을 기울이면 지금과 다른 산업의 경계와 성장 기회가 눈에 띄게 될 것이다.
(장강일. LG주간경제 2006.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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